07-26-2024
XX아, 잘 지내고 있지? 가끔 너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서 그림을 보고 그래. 내가 너의 그림을 좋아하니까. 오늘도 뉴욕에 함께 있는 친구에게 너의 그림을 보여주다가 너의 근황이 궁금해서 안부 인사를 하러 왔어. 겸사-겸사.
나는 그림 아래 화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자세가 느껴지는 그림이 좋고, 좋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의 그림이 좋은 것 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겠다.
그림을 통해서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개인의 사명감만이 가장 이상과 닮았다는 것,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넌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편할 것 같아.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너를 행복하게 하느냐 묻는 질문은 무의미할 테니 삼가하는 것이 맞을 거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우리가 아무런 의심이 없다면 행복하지 못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다만 늘 우리는 의심을 가지지. 그런 세상에서는 의심이 우리에게 단발적으로 선명한 자유의 감각을 주기도 하거든.
나는 가끔 상상력에 너무 큰 힘을 주는게 있어서 (망상에 몰입을 한다는 이야기), 사실 너는 내가 하는 말에 큰 공감을 못할지도 몰라. 몇 년 전 (우리가 홍대에서 작업실을 같이 쓸 때), 너에게 내가 어린 시절에 키우던 슈나우저를 닮은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같은 이름을 붙여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너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했거든. 난 네가 그때 분명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서 한 이야기인데 말이야. 거절을 딱 당해버렸지.
나는 그래도, 완전히 잘못 짚었던 거라도, 너의 그림을 똑같이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혼란스럽기야 하겠지만.
계속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