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2023

사랑이 목표가 된 순간부터 절대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순수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내는 것이라는 논리를 지었을 때부터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미술을 도구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이 모든 것이, 무조건적으로 절망을 통해야만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기다리는 순간 불가능해진 탓일까? 다만, 이런 사랑, 순수, 미술, 희망. 조금의 오염도 허용하지 않는 것들을,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간구하는 인간의 마음만큼은 순수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간구하는 마음 하나만 우리에게 허락된 이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비롯된 생각, 말, 행동은 퇴보만 될 뿐이라는 생각에 메리토크라틱하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에서 자리매김할 의욕이 없다. 간구하는 마음뿐만이 중요하니, 삶은 그것과 떨어뜨려 놓는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이쯤에 벌써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쉽게 무감각해지고, 무뎌지고, 더러워지는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다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절제, 학습, 훈련의 기반으로 사는 것이겠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산속으로 들어가서 피아노만 쳐도 좋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너무나도 유토피아와 같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아 기억에 남는다. 이것이 나의 상태에 물들지 않는 진심이다.

그렇다면 악기 들고 산으로 들어가던가. 천이랑 물감 들고 절에 들어가던가. 한국에 돌아가서 봉사활동에 한 몸을 바치거나 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발이 미국 땅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물질 없이는 가능하지 못한 생각들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게으르다. 그 절망을 뚫으면 또 뭐가 있을까? 더욱 편안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업그레이드의 세상에서 이상에 대해 고민하는 예술만큼은 돌고 도는 것 같다. 패션, 가구, 미술도 다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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